한글과 타자기 – 김태호

한글과 컴퓨터 회사를 떠난 지 거의 3년 반이 지났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글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있습니다.꼭 그 회사에 근무하고 있어서 생긴 것이라기보다는 컴퓨터는 처음 배운 시절부터 한글은 내가 가장 잘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재도 그렇거든요.블로그의 이웃으로 등록된 타이포그래피 전문가가 추천장을 적어 주신라는 글을 보고 이 책을 알고 궁금한 나머지 바로 주문했습니다.사실 그동안 관련 일을 하면서도 한글이 컴퓨터로 쓰이게 된 것만 알고 그 이전에 타자기에서 어떻게 역사가 있었는지까지는 몰랐다.그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된 역사 책 같은 형 한글과_타자를 보세요~

한글과 타자기 저자 김태호 출판역사비평사 발매 2023년 11월 30일.

타자기가 남긴 유산 키보드에 남아 있는 Return, Shift, TAB키, 그리고 E메일 참조(Cc)의 유래, 지금 이 블로그를 쓰는 것도 어쩌면 많은 사람이 글자를 기계화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타자기를 한번이라도 사용한 적이 있는 분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한자 한자를 퉁퉁 두드리며 일행을 넘으면 행을 바꾸기 위한 작업도 자기가 해야 한다는 것을.처음 타자기는 이런 줄 기능이 레버 형태(CR레버:Carriage Return)에 쓰이고 있었습니다만, 이 번거로움은 초기 타자기의 원조인#언더우드사에서 기능 개선을 하여 전동 자동 이송 장치기 장치를 1910년에 개발하게 되었습니다.우리가 매일 사용한 키보드에는 Enter또는 Return이라는 용어의 키가 항상 있습니다.이 키의 기능은 바로 다음 줄에 진행되거나 프로그래밍에서 입력을 의미합니다만, 초기 타자기의 CR레버가 전기화되고 Return키화된 것이 남았어요.

타자기의 시대는 끝났지만, 타이프 라이터가 남긴 유산은 여러가지에 남아 있습니다.이들의 타자기라는 초기 입력 장치는 키보드를 넘어 스마트 폰의 가상 키보드로 확대했습니다.Return키와 마찬가지로, 타이프 라이터의 상부에 글 때문에 만난 Shift나 TAB키도 키보드에 남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또 E메일을 보낼 때 받는 사람(To)과 함께 참조(Cc)이 있는데 이것도 타자기 시대에 타자기로 친 내용을 먹물 종이에 복사하고 배포할 때 사용한 복제된 사본이라는 용어인 Cc(Carbon Copy)의 줄임말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초기의 타자기는 단순히 입력 장치만 아니라 한글 맞춤법, 문법, 글쓰기 등이 확립되지 않은 채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뒤섞이고 있었습니다.한글을 가로 쓰기를 하거나 세로 쓰기를 할 건지부터, 타이프 라이터 때문에 로마자처럼 쓰는 푼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그 과정에서 우리가 잘 아는 2벌식과 3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2벌식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 2종류로 입력 체계를 만들어 현재의 대부분의 입력 체계이며, 3착식은 공·뵤은우 박사가 주장한 타자기 입력 방식으로 한글 창제 원리인 자음, 중성, 종성을 다른 타자기에 구현하고 입력하는 방식입니다.같은 자음()에서도 초성으로 들어가는 자음과 마지막 목소리에 들어가자음()는 형식이 다른 게 있어요.또 손이 분주하다 몇번도 하지 않고 정해진 문구를 누르고 빠르게 입력할 수 있다는 큰 장점도 있었습니다.

초기에 가장 그럴듯한 타자기는 해외 동포였던 송·기쥬이 발명한 송·기쥬 타자기였다고 합니다.키 배열의 위치는 다르지만 꽤 그럴듯한 것 아닌가요?알파벳의 로마자 중심 타자기에 한글을 접목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일본어나 중국어를 입력하기 위한 키보드를 사용한 적이 있는 분은 짐작이라고 생각합니다.그들은 한자라는 글자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때문에 초기 타자기가 매우 어려운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현재도 발음이 나오고 로마자를 입력하고, 그 중에서 좋아하는 문자를 선택하는 방식이 정착하고 있습니다.동 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만 자신의 글씨를 서방의 타자기에 가장 잘 정착시킨 민족이 바로 한국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초기 발명은 해방 이후 한글 타자기 현상 공모로 이어져 몇몇 발명가 노력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 이 책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공병우 박사도 이때 2등으로 입상했습니다. 공병우 박사는 사실 안과 의사입니다. 현재도 운영 중인 안과이며, 심지어 여러분이 자주 다녔던 광화문역과 종각역 사이에 크게 위치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개인 안과 원장이었던 공병우 박사는 왜 타자기에 목을 매었을까요?

공안과의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2 인주빌딩 4층

공안과의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2 인주빌딩 4층

매우 완고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던 공병우 박사는 지극히 속도와 효율을 중시한 사람이었습니다. 타자기는 빨리 치기 위한 도구입니다만, 문자의 모양이 어떻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았군요. 시판 타자기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그가 추구한 3착식이 대세에서는 많이 밀려났지만, 그의 업적은 한글을 가로쓰기 형태로 실용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타자기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후 공병우타자기는 군에서 꽤 많은 판매를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군대에서 저도 정보작전병으로서 문서작성을 즐겁게 했는데 이런 타자기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공병우 박사였던 것 같아요. (군에서 워드를 쳤다는 분, 꼭 읽어보세요^^)

이런 공병 우타자기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국문 버전 작성 때도 쓰이기도 했다고 하네요.

군 타자기 출신은 취업이 잘 됐다고 하는데 제가 사회초년생으로 취업할 때도 군 생활에서 타자기 경험은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경력이었습니다. 병원 의사로 활동하면서 군대라는 아주 어려운 시장을 연 그의 저력은 무엇이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러나 그 뒤 송·게봄 교수는 보류식이라는 키보드에서 텔레 타이프를 개발하게 됩니다.당시는 초성, 중성 입력 후에 종성이 오는지, 아니면 다시 초성이 오는지, 사람이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됬지만 이 보류식은 그 다음에 오는 모음을 통해서 그 전에 자음이 종성인지 다음 문자의 초성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능을 개발한 것입니다.즉 현재의 2벌식과 가장 유사한 입력 방식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우리가 이렇게 2벌식에서 글을 쓰게 된 것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문제는 있었지만, 이것은 타자기 시대 이후 PC로 전환되어 한글 입력 체계의 근간을 닦은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무려 1961년으로 약 20~25년 이후 국내 컴퓨터가 보급되던 시기에 근간이 마련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공병우 박사의 3착식은 점점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빠른 것도 좋았지만 표준은 때로는 다르게 만들어지기도 합니다…공병우 박사가 제5공화국 시절에는 미국에서 국내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가 1988년 한국에 들어와 한국문화원을 만듭니다. 그래서 탄생한 프로그램이 바로 현재 한글 1.0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무실도 물려주고 후원도 해줘서 우리가 이렇게 쓸 수 있게 된 거죠. 현재도 많은 기관에서 표준적으로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이후 수많은 글꼴이 생겨나고 훨씬 다양한 형태의 문서 작성이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컴퓨터 키보드로 입력하고 있던 시대를 거치면서 지금은 스마트 폰으로 더 많은 문장을 입력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장래 한국어는 어떤 형태로 입력합니까?음성으로 입력도 하지만 또 다른 기계의 발명으로 한글은 또 다른 입력 방식과 체계에 도전할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수많은 국가가 해내지 못한 고유 문자를 지키면서 최적의 입력 방식을 만들어 낸 한국인의 저력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일제 시대부터 컴퓨터가 보급되던 시대까지 수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블로그도 쓰고, SNS에서 매일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지 않을까요?한번은 이런 역사를 되돌아보면 좋다는 뜻에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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